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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잊어버리기로 했다

아버지, 아버지와 전 그저 먼 거리의 간격을 두고 계속 평행선을 그리며 "각자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서로가 평행선이니 먼발치에서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가끔 안부 인사는 할 수 있겠죠...

"너는 왜 그런 '미친 것'들 말을 듣고 있냐? 더 이상 이야기 하지 마! 그리고 너 정신 차려!"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네"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몇초간 나의 감정을 억누르며 숨을 고르는 동안 짧은 적막이 흘렀다.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어떤 상황'을 고통스럽게 바라만 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떤 사안'이 내 마음속 깊이 봉인되어 있던 '기억 한가지'를 깨웠다.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훨씬 많은 '절대 회복될 수 없는 부녀지간(父女之間)'이었지만, 쓸데없을 정도로 수많은 것을 기억하는 나라는 특이점 덕분이었을까?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아버지에 대한 미움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기억되는 몇 가지도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이야! 나의 감정은 이상할 만큼 크게 요동치고 있다.

'왜 하필 이 시점인거지?'

나는 이틀 내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아버지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안쓰러움은 점점 커져 커다란 고통이 되었다. 나는 손이 저릴 만큼 힘주어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무거운 한숨을 자꾸 내쉬었다. 휴대폰의 잠금을 풀고 들어간 메신저에는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대화 날짜가 눈에 띄었다. '2025년 1월 1일' 아주 짧고 형식적인 새해 축하 인삿말... 서로 안부를 묻기보단, 휴대폰 연락처의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보내는 덕담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의 대화 기록을 살피려 위로 스크롤했는데 각자의 생일을 맞아 짧게 안부겸 축하하는 내용들이 전부였다. 내가 대학 졸업 후 독립한 순간부터 10년째 타향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아버지와 나는 전화통화를 극도로 기피한채 생존확인차 형식적인 안부 메세지만 주고받고 있었다.

하루만 더 고민해보기로 했는데, 나는 결국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실 것인가 보다.' 전화를 걸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길어질 수록 나의 초조함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던 것에 마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 된 것처럼 후회를 거듭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가 이번에도 나의 전화를 거부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안도감까지 뒤죽박죽 섞인 혼란 속에서 힘겹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일부러 전화기를 멀리 두고, 책을 펴고 열심히 읽는 척 하는데 눈물이 책 위로 떨어졌다. 아버지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가슴속에서 수십번을 다듬고 연습했던 문장을 작은 소리로 되뇌이다가 눈물을 닦고 거칠게 코를 풀은 후 울음을 멈췄다.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일부러 멀리 두었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을 감지했다.

아버지의 전화였다! 휴대전화 화면으로 발신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아버지의 전화라고 확신했다.

"아버지!"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지?"
"네, 저 잘 지내고 있어요. 갑자기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조금 길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 미안한데 내가 조금 바빠. 몇분만 통화해도 괜찮을까?"
"네, 괜찮아요 10분 넘게 말씀드릴 정도는 아니에요."
"어, 그래 얘기해라."

"아버지, 혹시 그때 기억나세요? 제가 어느 주말에 아버지 뵈려고 아버지 집에 왔을 때, 아버지께서 갑자기 저한테 '어떤 일 때문에 억울하다, 가슴속에 쌓인 게 많지만 묻어두겠다'고 말씀하셨던 일이요."
"어?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었다고?"
"정말 기억 안나세요? 아버지 조금 취해계셨는데..."
"...아, 그래! 기억난다."

"그날 아버지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 '몇개의 문장'이 전부였지만, 이제 저 아버지께서 저한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아요."
"..."
"아버지, 요즘 상황을 보면서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제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아버지는 정말 멋진 분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전화 드렸어요."
"..."
"아버지 듣고 계세요?"
"...그래, 내 딸, 정말 고맙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아버지와 나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그날의 전화 통화는 처음으로 온기가 감돌았다. 통화가 끝나고 몇시간 후 아버지에게서 나에게 고맙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남편에게 드디어 아버지와 내가 조금씩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가까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하다'고,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남편의 두손을 붙잡고 울었다. 정말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나의 '친정' 아닌가? 거기에 더해, 타향살이하는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진정 무엇이겠는가?

green-field-and-blue-sky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그다음날이 밝아오던 오스트리아의 새벽 세 시...

한국은 정오에 가까워지는 오전이었다. 이틀 전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마친 후부터 떠오른 '어떤 생각'을 도저히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말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참으로 바보스럽게도, 나는 아버지와 그날의 대화를 더 자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아버지가 뭔가를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소망했다. 더 깊이 생각하고, 차라리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나는 저질러 버렸다.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짧은 신호음 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너무 자주 전화드려서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은 아닌지 죄송해요."
"괜찮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라."
"아버지, 이틀 전 통화했던 것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그래? 그게 뭔데?"
"아버지, 제가 지금 드리려고 하는 말씀 오해하지 마시고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
"아버지, 저랑 대화가 불편하시면 제가 보내드리는 것 보시고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바로 대답해 주시지 않아도 돼요 대답도 힘드시면 확인만 해주셔도 돼요."
"..."
"아버지, 오랫동안... 아주 힘드셨잖아요. 제가 아버지께 감히, 그리고 주제넘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오래전 그날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던 모습을 제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어요."
"..."

아버지의 짧은 침묵 후 아버지와 나는 다시 기존의 '부녀지간(父女之間)'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나를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며 소리를 지르고 거친 말들을 나에게 퍼부었다. 아버지의 과격한 대응은 나에게 사실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될 경우도 예상했다. 이것은 나에겐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인 내가 5살 이전부터 40살인 지금까지, 항상 보고 듣던 '아버지의 상대방에게 퍼붓는 폭언과 분노'였다.

나의 헛웃음이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도록 힘주어 입을 다물었다.

침묵하고 또 침묵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색한 적막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전화를 끊었다. 평소 같았으면, 한국인으로 나이가 어린 나는 분명히 아버지가 전화를 먼저 끊으시길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인 것처럼 전화를 끊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버튼을 누르기 직전 아버지도 전화를 끊기 위해 버튼을 누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버지와의 전화가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 후 휴대전화의 전원도 완전히 꺼버렸다. 그제야 치아가 서로 맞닿아 부서질 만큼 세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헛웃음과 눈물을 터트렸다. 새벽 4시, 거실 너머에 있는 침실에서 잠들어 있는 남편을 깨울 수도 있을 만큼 소리가 컸다. 재빨리 소리를 줄인 채 서재에 놓인 책상에 엎드려 계속 흐느꼈다. 헛웃음도 멈출 수 없었다.

"그랬구나. 나의 희망은 그저 '희망'이었구나. 그동안 나는 아주 쓸데없는 것을 기억하며 아버지를 걱정했던 것이었구나!"

나의 예상이 100퍼센트 틀렸다고, 누가 감히 나에게 반대입장을 내세울 수 있을까?
정말 아니기를 빌었던, 그저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로 남기 원했던 우려가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