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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어떤 의사 선생님 3

왜 그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로 분주한 전철 안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몇 달 전, 정신과 상담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의사가 내게 한 말이다.

잠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물었다. 들은 것이 맞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는데 무슨 뜻인지, 의사와 환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해준 말인지. 의사는 의사로서도, 개인적으로도 나에게 해줄 말이 이것밖에 없어서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진료시간에 울며 이야기하던 나, 이번에는 눈물을 꾹 참았다.


초반 1년은 한 달에 한 번뿐인 상담일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개인적인 문제, 그리고 신혼 초의 결혼생활 및 서양에서 사는 동양인으로서의 겪는 갈등과 낯섦 등에 관한 수많은 상담거리들. 한 달에 한번, 2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서 많은 것들을 쏟아내느라 횡설수설하기 일쑤였다. 의사는 나를 평가하거나 조언하는 대신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많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의사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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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상담 1년 차 어느 날, 복용하는 약을 바꾸게 되었다. 

새로운 처방전을 기다리며 잠시 시선을 진료실 안으로 돌렸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액자에 시선이 갔다. 액자 속 교육 및 자격을 증명하는 수많은 문서들, 당시 나의 서툰 독일어로도 의사가 얼마나 엘리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것에 눈이 고정되었다. 

의사의 생년월일이었다.

의사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것이 왜 그렇게 충격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그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로 북적이는 분주한 전철 안에서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는 것도 잊은 채 집으로 걸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불도 켜지 않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현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그렇다, 이것은 사실 주책맞은 열등감 때문이었다. 부러움, 창피함, 초라함 등 온갖 수치스러운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겨우 몇 달 나보다 앞서 태어난 사람의 인생, 그리고 겨우 몇 달 늦게 태어난 나의 인생.
엄청난 저주라도 받은 듯한 나의 삶, 사회에서 성공을 이룬 동갑내기에게 터놓은 나의 초라하고 거지 같은 삶.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 알았다면 다른 병원을 갔었을 텐데, 나는 왜 그동안 모두에게 공개된 의사의 이력이 담긴 액자들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것일까?

의사는 당연히 첫 진료부터 나의 생년월일을 알고 있다. 혹시 그동안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동갑이라는 것 때문에 환자인 나의 말을 들어주되 평가하거나 조언해 주는 것에 극도로 조심했던 걸까? 아니면 말할 가치도 없어서?

별별 바보 같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의사가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자존심이 상했다. 열등감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그리고 화가 치솟았다. 바보 같은 나, 쓰레기 같은 나. 텅 빈 집에서 한참 동안 눈물 콧물 쏟아내며 청승맞게, 소란하게 울고 또 울었다.


그 후, 상담을 받을 때 나는 말을 극히 아꼈다. 자연스럽게 의사가 질문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질문에는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감정이나 생각들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의사는 자신이 도움이 필요하면 어떤 것이든 말해 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의사에게 처방전이면 충분하다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거리를 두었다. 코로나 사태로 락다운이 시작되었고 온라인으로 상담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진료실에서 직접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소통대신 모니터에 올려진 카메라, 화면 속 의사의 얼굴을 보는 상담은 나의 숨겨진 감정과 마음을 숨기기 충분했다.

2020년부터 한 번도 병원 진료실에 가서 상담받지 않았다. 의사는 몇 번 직접 진료실에서 상담받는 것을 권유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매번 진료 며칠 전 온라인 상담으로 바꾸기를 요청했다. 몇 달 전도 온라인 상담이었다. 그날은 한 번도 카메라를 응시하며 모니터 속 의사를 보지 않고, 화면 속 진료실의 책장만 보고 있었다. 의사는 평소보다 더 많은 질문을 했는데 나는 더 짧게 대답했다.

주어진 상담 시간은 단 25분, 약간의 시간초과로 의사의 다음 진료 전 짧은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도 나도 모두 이미 다 아는 것들에 대한 질문과 대답. 그중 우울증의 원인인 부모님에 대한 질문에는 정말 대답할 것이 없었다. 나는 그들과 수년 전 이미 의절했다. 신년이라서 질문한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어쩌겠어요 이게 제 운명인데, 전생에 저는 아주 나쁜 사람이었나 봅니다."

의사가 처음으로 내비친 나라는 환자에 대한 사적인, 인간적 감정표현. 감사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대신 우스꽝스럽게 전생, 카르마 이야기를 들먹이며 농담하듯 대답했다.

의사 직함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의 삶과 마음의 병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주는 의사에게 고마울 뿐이다.

같은 출생 연도 같은 나이의 다른 인생을 사는 두 사람. 그렇기 때문에 이어진 인연, 의사와 환자인 나.
그동안 숨기고 있던 어두운 감정은 모두 버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과 인연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멋지게 일궈내겠다고 결심했다.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