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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어떤 의사 선생님 2

어린 시절부터 앓게 된 마음의 고통은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한 번 더 마음의 병을 치료받기로 결심했다.

진료실 안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벽을 향해 놓인 많이 작아 보이는 책상과 의자, 벽면의 3분의 1만 차지한 책장, 중앙에는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2개의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게 전부였다.

단출하다고 느낄 만큼 여백이 많은 공간이었다. 무늬가 없는 반불투명 하얀색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으로 이른 오후의 햇빛이 들어왔는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높은 천장구조를 가진 오스트리아의 오래된 건축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 자리한 진료실의 모습은 내가 어디에,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 약간의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의사가 직접 나의 기본 정보(이름, 연락처 등)를 전산시스템에 입력했다. 검은색의 작은 노트북은 정보등록 후 닫혔다. 한국의 대부분의 병원은 커다란 모니터가 환자와 의사 사이의 책상에 자리하고 환자가 증상등을 설명하면 의사는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입력을 한다. 눈을 마주치는 것은 짧은 시간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환자를 위한 넓고 편안한 소파, 의사는 환자를 마주 보는 위치의 작은 1인용 소파에 앉는 구조라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많이 낯설고 불편했다.

환자 자신의 증상을 직접 체크해야 하는 서류들도 없었다. 의사에게 물었지만 그런 것들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서 어떤 것이든 편하게 말을 하라고 했다. 소파보다 낮은 유리테이블에 놓인 티슈 박스와 2개의 물컵을 사이에 두고 말을 시작했다. 의사는 차분한 미소로 자신의 소파에 앉아 종이와 펜도 없이 그저 나의 눈을 보며 울음과 시시각각 변하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들어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의사에게 다 털어놓은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궁금해서 진료실 안에 시계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시계도 없는 진료실이라니! 급하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총 60분의 진료시간에서 10분은 첫 전산 등록과 의사 및 병원을 소개하는 안내 등을 들으며 소요된 것 같았고 30분 정도는 의사에게 말을 하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그 30분은 정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탁 트여있는 공간에 마주 보고 앉아 환자의 말에 집중하는 젊은 의사의 숙련됨과 여유!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스트리아는 정말 다르구나! 마음속에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눈물을 쏟아내며 잔뜩 찡그렸던 얼굴의 긴장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의사는 나의 말이 끝난 것을 확인한 후 본인이 내린 진단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기존에 있던 우울증과 불안장애 외에 2가지가 추가되었다.

이제 의사가 약을 정해줄 차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과거(2010년) 한국에서 처음 방문했던 정신과에서 몇 가지 병명을 진단받고 한국에서 하루 3회 각각 4종에서 많게는 6종 이상의 약을 복용했던 경험 -처음엔 마음에 한 점의 얼룩도 없이 편해지고, 밤엔 약 복용 후 5분이면 잠에 들 수 있었던 마법 같던 약효과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침에 한번 먹으면 하루 종일 효과가 지속되는 한 종류의 약과 밤에 잠들기 힘들 때 복용할 수 있는 작은 용량의 항히스타민제를 우선 처방할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진료시간에 약이 어땠는지 확인하고 용량 조절을 할 것이며 두 달 후에 나머지 증상에 대해 다른 한 종류의 약이 추가될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약을 적응하는 기간에 약으로 인해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갑자기 마음상태가 심하게 나빠질 경우 자신의 근무시간 아무 때나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해도 된다고 했다. 마음의 병은 한번 생기면 언젠가, 갑자기 깨끗이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약은 최소한으로 복용하며 상담을 꾸준히 받고 스스로의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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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눈부시던 봄날 비엔나의 자연

어느 순간 대기실에서 봤던 내 진료시간 전의 환자가 환한 웃음으로 의사와 진료실을 나오던 모습처럼 웃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그것도 정신과에서! 파란 하늘이 펼쳐진 어느 봄날의 따뜻한 햇살과 봄바람 속 꽃향기를 맡는 듯한 행복함을 느끼게 될 줄이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는 우리의 환한 미소에 덩달아 웃으며 이번엔 더 활기찬 악수와 그들의 독일어로 의사와 조금은 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