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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노트북에 파일을 옮기다가 어떤 추억에 눈물이 흘렀다

웃는 중인데, 분명히 미소로 얼얼해진 얼굴인데,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해가 밝아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이 되었다. 통유리창 넘어 보이는 그날 아침은, 어찌나 파란 하늘과 초봄의 공기가 싱그럽던지...

얼마 전, 노트북과 모니터를 새로 구입했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오스트리아지만, 거리에서, 그리고 현지인들의 집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산한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보는 것은 전혀 생소한 일이 아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떤 어려움 없이 노트북과 모니터를 모두 한국 기업의 제품들로 구매할 수 있었다. 노트북은 거의 9년 만에, 모니터는 4년 만에 교체하는 것이라서 모두 사양이 높은 것들로 골랐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압박에도 기분은 날아갈 듯 기뻤다.

첫날은 구매한 제품들을 박스에서 꺼내 조립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외관과 내부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느라 반나절을 보냈다. 둘째 날은 사용법을 익히고 추가로 필요한 프로그램 및 제품들에 정말 이상이 없는지 정밀한 검사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번 한국과 한국 기업의 위상에 감탄하며 가슴 설레었다. '한국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서 뿌듯하다'는 자부심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셋째 날이 밝았다. 이제 진짜 내 할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기존의 노트북과 모니터가 너무 오래되고 사양이 낮았던 이유로 불편함은 물론 시도도 해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드디어, 오랫동안 미루어 두기만 했던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새벽 3시에 눈을 뜬 나, 바로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나의 작은 서재로 향했다. 잘 읽지 않는 책과 사용이 뜸한 물건들을 보관해 둔 책장의 가장 높은 곳으로 손을 뻗었다.

잠시 후, 책장 구석에서 14년 전에 구입해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는 HDD(Hard Disk Drive)를 꺼냈다. 이것도 역시 한국 기업의 제품이다. 한 번 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 산 노트북에 연결했다. 14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처음 산 것처럼 성능이 빠릿빠릿하다.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HDD(Hard Disk Drive)에서 노트북으로 파일들을 옮기고 완료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14년이 담긴 파일의 폴더들을 하나하나 열었다.

'아! 나한테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 '어머! 잊고 있었는데, 드디어 찾았네!', '어? 이게 여기에 있었어?'

생각하지도 못했던 보물을 찾은 것처럼, 놀라움의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계절의 풍경, 계절마다 다른 공기의 냄새, 나의 나라, 그때는 미세 먼지로 가려진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 대신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나의 20대는 어떠했었던가?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참 서툴렀지만 풋풋했고 솔직했고 나는 젊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그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자취하던 2년 동안 별별일 도 많았지만, 나의 10대와 20대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웃는 중인데, 분명히 미소로 얼얼해진 얼굴인데,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해가 밝아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이 되었다. 통유리창 넘어 보이는 그날 아침은, 어찌나 파란 하늘과 초봄의 공기가 싱그럽던지... 주말에도 일찍 기상하는 남편이 거실을 오고 가고, 내가 조금만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흘릴 조짐을 보이면 자다가도 깨서 얼른 내 얼굴 앞으로 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우리 예쁜 털북숭이 고양이의 털에 간지러워 재채기 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렇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추억 열어보기... 나중으로 미뤘다.

summer-day-in-wien

다음날인 월요일은 일부러 다른 것들을 하며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떤 것 하나,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 나는 다시 새벽 3시에 기상했다. 항상 나와 남편의 배게 사이에서 함께 잠을 자고, 우리 둘 중 하나가 먼저 일어나면 따라서 일어나는 우리의 예쁜 털북숭이 고양이도 잠에서 깨어났다. 함께 거실로 나와 고양이 간식과 놀이를 마쳤다. 고양이는 내 서재에 통유리 창가에 놓인 캣 타워 꼭대기로 올라가 아직 어두운 이른 새벽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고요한 순간... 나는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심호흡하고 다시 추억의 파일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어떤 한국 노래(가요) 한 곡...

노래의 도입부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얼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눈물이 책상 위로 후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입을 아무리 틀어막아도 소용없다, 나는 자제력을 잃고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캣타워(Cat Tower) 꼭대기에서 바깥 풍경을 보던 고양이가 바로 내 책상으로 뛰어내렸다. 고양이 털에 얼굴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 고양이는 방향을 바꿔가며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눈물을 쉽게 멈추지 않아 나를 마주 보고 앉아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나를 안아주는 걸까? 고마워 내 고양이.

그렇게, 아침 해가 밝아 올 때까지 눈물을 실컷 흘려보냈다.

나의 나라, 내 조국이 그립다. 별 볼 일 없고 대단한 것 하나 없던 나의 젊은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동안, 마치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을 하듯 강제로 지워버리려고 했던, 영원히 망각하고 싶었던 한국에서 삶. 그 기억을 더 이상 묻어 둘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향수병을 앓겠지만, 이것이야 말로 올해 40세를 맞이하는 나에게 어떤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 이번 달, 오늘 겪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14년 만에 다시 열어본 파일 폴더 속 노래 한 곡에, 10년 동안 꽁꽁 얼어있던 가슴 한구석이 녹아버렸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