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10년 차,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이렇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로 한국을 떠난 지 10년 차가 되었다.
외국에서 꼭 정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간절한 욕망도 없었다.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그 당시 조성된 환경이 자연스럽게, 나를 머나먼 외국으로 보냈다. 한 나라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는데, 떠날 때가 되면 꼭 다른 나라로 갈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또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오스트리아에 왔고 오스트리아인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기존의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부서졌다. 이렇게 산산조각이 난 적은 2012년 이후로 두 번째다. 2012년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과거엔 나를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에 금이 갔다면, 이번엔 아직 분리될 준비가 되지 않은 껍질까지 모조리 떼어지는 것이었다. 생채기투성인 채로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모든 것에 몇번을 더 고민하고 극도로 조심하며 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자면 원래부터 넓지도 않았던 인간관계를 모두 정리해 버린 것이다. 나는, 주변인들이 나를 필요로 할때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거나,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사람이 아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수동적으로 살던 나에게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고 후련한 일이었다.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는 높고 두꺼운 장벽을 세웠다. 타향살이, 안 그래도 제약도 많고 활동반경도 좁아진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정반대의 문화, 바로 이해하기보다 왜? 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무엇이든 안전하고 튼튼한 것이 최우선이다. 인간관계를 정리한 후 허전할 새도 없이 나의 편, 지인 그리고 가족이 생겼다.
유럽에서 살게 되면서 한없이 개방적인 것 같은 서양의 문화가 사실 철저한 인맥 주의, 가족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었다.
그렇게 되면서, 나에겐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거북함과 이질감에 대한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거슬리는 어떤 것에 신경 쓰느라 허비한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커다란 분노가 인다. 감히, 건방지게 누구를 가르치거나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화와 관습이 훨씬 좋은 거라는 식의 사대주의를 드러내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왜 한국에서 인간관계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한순간 모든 것을 정리해 버렸는지, 타향살이하면서 깊게 깨닫게 되었다. 기존 나의 존재라는, 그것이 산산이 부서짐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떠나 사는 것이 해답이었다고, 그래서 내 운명에 감사하다고 굳게 믿게 된다. 그러면서 언제 나을지 궁금했던 오래된 상처가 점점 아물고 있음을 체감한다.
호불호가 강해진 나, 가끔 낯선 기분에 사로잡힌다. 새살이 돋아나고 상처에서 말끔하게 회복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