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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여섯, 나의 엄마

엄마, 너무나도 보고 싶은 엄마. 나는 아직도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다섯살의 아이로 멈추어 있다. 몇 년 전 꾸었던 꿈 이후로 다시 엄마를 만날 수가 없다. 비록 꿈이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를 꼭 안아주었던 엄마...

엄마! 왜 그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야 했어?

당신의 딸이 겨우 생일 한 달 지난 5살인데,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렇듯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딸, 그 어린아이 눈앞에서 죽어야 했어? 이제 막 5살이 된 애가 한글은 어떻게 읽고 경찰이나 응급구조 번호를 알고나 있겠어? 80년대 커다란 전화기의 다이얼을 어떻게 돌려 손가락에 힘도 없는데?

처음엔 엄마가 우리 놀래주려고 장난치는 줄 알았어. 우리 매일 숨바꼭질하고 음악 틀어놓고 셋이 함께 둥글게 손잡고 춤도 추고 했었잖아. 그래서 난 장난치지 말라며 쓰러진 엄마의 등만 두들겼어.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엄마는 엎드린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어. 나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어. 동생이 어리둥절하게 나와 엄마를 보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어.

비가 세차게 내려서 이웃이 들을 수 없었나 봐. 아무도 우리가 우는 소리에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어. 그렇게 한참을 울었어.

엄마 얼굴을 보고 말하면 엄마가 일어나 "장난이었다." 하면서 웃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온 힘을 다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는데 5살 여자아이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었어.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 순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기억은 내가 윗집으로 올라가 출입문을 두드리며 "아줌마! 아줌마!"하고 울부짖었던 거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은 깜깜했고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어.

엄마는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고 어떤 남자가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 울음을 그친 나는 엄마가 하얀 천에 가려져 들것으로 옮겨지는 모습을 낯선 구경거리처럼 보고 있었어. 엄마, 그거 알아? 그제야 나에게 아빠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 엄마가 죽기 전까지 아빠가 있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어.

엄마! 나 어렸을 때 매일매일 엄마가 꿈속에 나타나 나를 보며 울었던 것 기억해.

계모랑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로 맞았는데, 그런 날의 밤엔 꼭 나타났었지.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다가가려 하면 왜 사라졌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아? 엄마가 우리를 떠났던 나이, 그 날짜에 엄마 곁으로 가겠다고 결심했어. 그때를 꿈꾸며 버티고 또 버텼어.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엄마가 남긴 책에 있던 오스트리아에 오게 되었어. 그런데, 이곳에 온 지 이틀 만에 어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그리고 그 남자 때문에 나는 '그날'을 그냥 지나쳐 버렸어. 사랑을 절대 믿지 않았던 나는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어, 사랑에 빠진 우린 결혼했어.

결혼하고 1년이 지났을 때 엄마가 내 꿈에 나타났었지,

그동안 엄마의 젊은 모습만 보다가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을 보고 놀랐어. 이번엔 엄마가 나한테 먼저 다가왔어, 처음으로 활짝 웃는 얼굴로 "ㅇㅇ아"라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엄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기뻤지만, 화가 났어. 이제서야 엄마가 나에게 말하는 것에 너무 화가 났어. 그래서 엄마한테 달려가 나를 안아주려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울면서 엄마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또 쳤어.

그런데 엄마는 나를 토닥이면서 계속 미소를 지었어. 왜 그랬어? 왜 계속 웃기만 했어? 엄마 품에서 실컷 울다가 얼굴을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었는데, 어느새 엄마는 멀리 사라지면서 나한테 손을 흔들더라. 왜 그렇게 빨리 가버린 거야? 가지 말라고 꿈속에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남편이 깜짝 놀라 나를 깨웠어. 내가 눈을 감은 채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뭔가를 크게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어.

남편한테 꿈 얘기를 하니까, 그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도 몇 달 전 꿈속에서 온화한 표정을 가진 어떤 중년의 아시아 여성을 스쳐 지나듯 봤다고 했어. 누굴지 짐작은 했지만 내가 울까 봐 말하지 않았었다고 했어. 몇시간 후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얼른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잠을 청했어. 그런데, 그날 이후 더 이상 엄마를 꿈에서 만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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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

이 나라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가볍게 안고 양쪽 볼을 맞대는 인사를 하는데, 시부모님은 늘 나를 힘주어 안아주셔. 그럴 때면 그분들에게서 사무치게 그리운 '엄마의 냄새'가 나. 시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예쁜 내 딸'이라고 불러주셔, 나는 시부모님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고 있어.

더는 엄마를 꿈에서 만날 수 없어서 아쉽지만, 그날 마지막으로 꿈에 나타나서 나를 바라보던, 나이 든 모습인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어. 엄마, 나를 지켜줘서 고마워. 언제나 사랑해 줘서 고마워. 엄마의 예쁜 사위, 남편과 시부모님께 최선을 다할게. 끝까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게.

엄마,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야.

너무너무 보고 싶어! 이제 난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어. 그런데 여전히 나는 5살 아이로 멈춰있어. 엄마의 듬직한 사위는 단 한 번이라도 다시 꿈에서 엄마를 만나고 싶대. 그땐 한국식으로 큰절 올리고 엄마를 꼭 안고 "장모님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싶대.

엄마! 나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살게.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면 그땐 나 오랫동안 안아줘, 잘했다고, 대견하다고 말해줘. 엄마가 못다 한 삶, 내가 대신 살게. 이번엔 꼭 이루려고 이렇게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써.

사랑해 엄마, 내년 엄마의 생일에 또 글 쓸게. 그땐 행복한 이야기만 할게.

2023년 4월 00일,
엄마의 하나뿐인 딸 올림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