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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가는 2023년을 바라보며

몇 달 전, 평소 말수도 별로 없고 속마음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이 2023년에 대한 소감을 짧게 털어놓았다. 심지어 고열을 동반한 몸살감기에 걸려도 아픈 티를 전혀 내지 않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3년보다 올해 2023년이 더 힘든 것 같아."

몇 달 전, 평소 말수도 별로 없고 속마음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이 2023년에 대한 소감을 짧게 털어놓았다. 심지어 고열을 동반한 몸살감기에 걸려도 전혀 아픈 티를 내지 않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애 시절부터 나는 주로 말을 하고 남편은 듣는 입장이었다. 지난 3년도 내가 먼저 화두를 던지고 남편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2023년이 되면서 일상의 여유가 다시 돌아오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꺼내는 것을 삼가고 있었다. 가슴이 매우 답답하던 차였다.

그날, 남편과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집스러울 만큼 과묵한 그가 그 짧은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가슴앓이했을지 나의 온 신경에 생생히 전달되었다. 몇시간이나 이어진 대화가 끝나갈 무렵,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표현해 주어서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를 했다. 사실 나도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꾹꾹 눌러두고 있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로가 동의했듯이 앞으로의 세상살이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으니, 걱정거리가 생기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아내인 나에게 언제든지 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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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틈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생명력

9월이 되면서 여름의 뜨거웠던 공기가 점점 식어갔다. 그리고 10월이 되었다.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선선한 공기는 무엇보다 기다리고 행복한 순간이다. 올해 가을 겨울부터는 예전처럼 자주 주말 산책을 하고 평일엔 퇴근 후 만나 저녁까지 시내를 거닐기로 계획을 세웠다. 9월 말부터 나는 다시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회사 앞으로 마중을 나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시내 중심부는 언제나 봐도 아름답다. 약속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외출해 시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남편의 회사 앞에 도착한다.

그렇게 서서히 우리의 삶이 적응하고 안정되어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불과 이틀 전, 어떤 뉴스 속보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어떤 슬픈 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같은 일이 다른 나라에서 또 시작되었다.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이번 사건은 아주 빠르게 번지고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3년 동안 세상을 뒤흔들었던 사건에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 있던 나인데, 현시점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충격과 걱정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어떤 허황한 꿈도 꾸지 않는다. 힘들었던 나의 성장기와 과거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시간 내내, 버거울 만큼의 진지한 생각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나의 영혼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어떤 경험을 하며 이번 생을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는다. 이것을 깨달았던 순간의, 지금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에 복받쳐 뜨겁게 흘러내리던 눈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힘으로 자유롭게 숨도 쉬기 힘들었던 지난 3년도 살아냈다.

어제 저녁, 남편과 나는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눴다.

. . .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가기로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기로 했다.
남편과 나, (시)부모님 그리고 우리의 가족이 된 소중한 털복숭이 고양이와 함께
언제나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