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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에게 쓰는 편지

혹시, 그들이 당연히 모든 역경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억수로 운이 좋은 너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로 저지른 일을?

2주 전이었다, 남편을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를 소개하기 위해 주말에 우리를 초대했었다고... 남편은 나에게 미리 묻지도 않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답답해할 만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10여분간의 짧은 대화 후, 초대를 거절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결국 며칠 후, 월경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PMS)을 핑계로 이틀 내내 남편에게 '너'를 향한 분노를 실컷 울부짖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독일어를 동원해서 '너'에게 고함을 지르고 싶다. 앞으로도 널 계속 봐야 한다는 것, 끓어오르는 화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1989년부터 2014년까지 내가 누군가에게서 들어야 했던 말들

  1. 너네 엄마는 왜 갑자기 죽어서 날 힘들게 하냐?
  2. 네 엄마를 사랑해서 결혼한 거 아니야, 부잣집 딸이라서 결혼한 거야!
  3. 다른 여자랑 결혼했었다면, 나는 이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거야!
  4. 너희 둘을 낳은 게 나의 가장 큰 실수다.
  5. 너네 엄마 죽었을 때 바로 고아원에 보냈어야 했어!
  6. 사실, 너희 새엄마 될 사람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여자도 만나고 있었다.
  7. 그 여자를 사랑한 적 없어, 너희한테 새엄마 역할을 해주겠다고 해서 같이 산 거야!
  8. 나도 남자야! 나도 내 인생이 있어!
  9. (후략...)


이제 더 이상, 정말 치가 떨리게 싫은, 초라하고 외롭게 늙어갈 일만 남은 '그 남자'를 다시는 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역만리나 떨어진 오스트리아에서, 그동안 10년 가까이 외국에서 생활하며 별의별 일에 면역이 생겼다고 자신만만했던 내가, '어떤 남자'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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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싹을 틔운 두 개의 씨앗은 점점 자라고 있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도 곧 나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언제, 마음에 쌓아둔 것들이 폭발할지 모른다. 내가 20대 중후반이던 시절,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찾아간 병원에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고, 스스로 붙잡고 살아온 의지력이 대단하다는 칭찬(?)의 말을 들었다.

혹시, 그들이 당연히 모든 역경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억수로 운이 좋은 너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로 저지른 일을?
그래, 한국에도 '너'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여전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저 나이만 들어가는 '어떤 남자', 그 남자는 바로 '나의 아버지'다.

아직도 내가 왜 이렇게 널 비판하는지 궁금한가?
그럼 한번 더 이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