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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오스트리아 겨울 저녁 풍경 Winternacht in Wien, Austria

어느 순간부터 자주 울던 것을 멈췄다. 골목골목을 걸으며 행복함에 작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서로의 겨울 외투를 고쳐주며 환하게 웃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비엔나 곳곳에 열린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했다.

수년 전 유럽살이를 시작했다. 나는 거주하고 있던 나라의 밤 풍경에 깊이 취해있었다.

그 곳에 도착했던 첫날, 공항을 빠져나오며 봤던 야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깊은 어둠에 잠긴 도시가 전부 노란 불빛에 취한 듯 일렁이고 있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데, 마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정지된 동상같이 보였다. 다양한 색과 밝기로 화려하게 빛나는 한국의 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공산주의 /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대규모로 지어진 어둡고 딱딱한 잿빛의 콘크리트 건물들. 그리고 기존 유럽역사와 각 나라의 정체성까지 지워버리려던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살아남은, 진짜 유럽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멋진 건물들... 모두가 한데 뒤섞인 채 겨우 어둠을 밝히는 노란 백열등에 물든 모습은 답답함과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가을이 오면 해가 빨리 진다. 그리고 거리에 노란색의 백열등이 하나둘씩 켜진다.

퇴근 후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마치 꿈길 같았다. 마치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작은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며 밤길을 걷는 것 같았다. 우울한 어떤 날의 퇴근길에선 어느 한구석도 절대 빠져나갈 수도 없고 숨이 막혀오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깊은 늪 속에 몸이 잠기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의 고독' 그 고독의 본연을 그 나라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다. 왠지 모를 처절함, 몰려오는 쓸쓸함, 외로움, 더 깊어지는 우울증. 고개를 숙이고 걷는 날이 많아졌다. 햇살이 눈이 부신 아침과 낮에도 더 이상 행복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유럽의 다른 나라로 떠났다.

그렇게, 또 그렇게 몇 나라를 떠돌다가 나의 숙명 같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왔다.

역시나 다를 것 없는 짙은 노란색으로 물든 도시의 밤 풍경은, 나에게 정말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 온 지 이틀 후, 어떤 남자를 만났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까?

(중략)

결국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의 첫 번째 2017년 오스트리아 빈의 겨울.

운명이라고 믿었던 어떤 실행, 수십 년 동안 잠식되어 있던 어둠에서 벗어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을 지속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생겼다.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을 위해 멋지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인생의 여정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항상 내 옆에 있는 '그'와 함께 걷는 '온통 노란 불빛에 물든 밤'은 더 이상 우울하거나 고독하지 않다.

2017년 겨울, 나와 그(남편)는 '노란빛에 물든 어두운 밤'을 정말 많이 걸었다. 그가 왜 그렇게 일부러 나와 함께 밤길을 나섰는지 나는 안다. 어느 순간부터 자주 울던 것을 멈췄다. 골목골목을 걸으며 행복함에 작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서로의 겨울 외투를 고쳐주며 환하게 웃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비엔나 곳곳에 열린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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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으로 향하는 2017년 겨울 밤

2017년, 노란빛으로 물든 겨울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서 새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둘이서 함께.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