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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알아차린 엄마의 피아노 연주곡 Bach C-Major Prelude

다음날의 아침해가 밝아올 때까지, 피곤함도 잊고 이 짧은 곡을 듣고 또 들었다. 왜 갑자기, 내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일까? 왜, 몸과 마음이 이 짧은 곡에 마비된 것처럼 꼼짝할 수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일까? 이 곡을 들었던 첫 순간부터 뭔가 익숙했다.

지금으로부터 13여 년 전, 주말을 앞둔 야심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TV를 켜고 리모컨으로 무심하게 채널을 바꾸고 있었다.

모든 채널을 3번씩 돌려봐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짧은 순간임에도 유독 눈에 거슬리던, 뭔가 촌스러워 보이는 영상을 방영하고 있던 채널에 멈췄다.

많이 오래된 것 같은 영상의 지글거리는 화질과 황토색의 건조한 흙먼지가 자욱한 풍경은 안 그래도 우울한 마음을 더 어두워지게 했다. 다시 채널을 돌려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결국 잠에 들기 위한 백색소음으로서 그 영상을 틀어놓기로 했다. 완전한 어두움이 싫었던 나는 TV를 끄지 않고 볼륨을 겨우 들릴만큼 작게 줄인 후 벽을 보고 누워 벽에 비치는 TV의 불빛을 응시하며 화면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들을 들었다.

어떤 영화 같았다. 인물들의 대사마저도 흙먼지가 가득한 황량한 배경처럼 건조하고 딱딱했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몸을 돌려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볼륨도 조금 더 높였다. 잠시 후, 누워있던 나는 어느새 상체를 세우고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화면 속에 홀려 들어갔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생각되는 중년여성이 눈을 감은 것처럼 나도 눈을 감았다. 내 가슴이 아려왔다. 눈물이 흘렀다. 곧 나의 몸은 격렬한 울음으로 들썩였다.

소년의 피아노 연주, 그리고 그것을 듣는 주인공 여성의 모습. 길지 않은 장면이었고 내가 자세히 알아차리기도 전에 지나가버렸다. 비디오나 DVD가 아니니 그 장면을 다시 돌려볼 수도 없었다. 재빠르게 노트북을 열어 지금 보고 있는 영화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화의 제목을 모르고 있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의외로 궁금함에 대한 답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Bagdad Cafe'(Bagdad Cafe/Out of Rosenheim, 1987, 감독 Percy Adlon)

bagdad-cafe-google-search
영화 바그다드 카페 구글 검색

영화는 이미 명작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었다. 내가 빠져들었던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여운이 남기로 손꼽히는 명장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부분만 영상으로 편집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맙게도 짧은 영상 클립 속에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이 있었다.

영화에서 소년이 피아노로 연주했던 곡, 그것은 'Johann Sebastian Bach'의 'C-Major Prelude'(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BWV 846-869 - 1. Prelude in C Major, BWV 846)였다.


다음날의 아침해가 밝아올 때까지, 피곤함도 잊고 이 짧은 곡을 듣고 또 들었다. 왜 갑자기, 내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일까? 왜, 몸과 마음이 이 짧은 곡에 마비된 것처럼 꼼짝할 수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일까? 이 곡을 들었던 첫 순간부터 뭔가 익숙했다.

가슴속에 거친 파도가 일렁였다.'엄마'였다. '내가 5살 때 돌아가신 엄마가 피아노로 즐겨 연주했던 그 음악'이었다.

이제서야 기억하다니, 바보 같은 나! 처음으로, 초등학교 때 단 한 번의 고민도 하지 않고 피아노 배우는 것을 중단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후회했다. 엄마의 유품이 되어 오랫동안 내방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그 소중한 엄마의 피아노를, 수능이 끝나고 이사를 한다는 핑계로 미련도 없이 버리듯 누군가에게 줘버린 스스로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엄마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이미 나는 체르니 50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엄마가 사두었던 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의 피아노 악보집과 함께 즐겁게 피아노를 칠 수 있었을까?

엄마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엄마와 함께 클래식음악을 듣고 같이 피아노를 치며 '정다운 모녀'로서 언제까지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 수 있었을까?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엄마 없는 삶을 사는, 이제는 돌아가시기 직전의 엄마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든, 점점 늙어가는 딸.

원망스러운 엄마, 그래서 더 가슴이 아리도록 사랑하는 엄마를 매일매일 수십 년 동안 그리워하는 딸.

오늘, 이 글을 쓰며 엄마가 연주했던 바흐의 평균율을 듣는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