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Liebes Tagebuch! Click

그리움 둘, 어떤 남자

한국을 떠나기 전 여름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저녁시간, 강남의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봤던 어떤 남자. 혹시 너였을까? 태어나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어. 짙은 어둠과 비를 막는 우산아래에서 시선을 돌리다가 본 어떤 사람.

한국을 떠나기 전 여름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저녁 시간, 강남의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봤던 어떤 남자.

"혹시 너였을까? 태어나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어. 짙은 어둠과 비를 막는 우산아래에서 시선을 돌리다가 본 어떤 사람. 겨우 몇 초 만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충격과 확신에 차서 말을 걸어 볼까 망설이는 것 말이야. 네가 너와 함께 있던 사람이 탈 버스가 오길 기다리고 배웅한 후 뒤돌아서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그 20여분 동안, '너'일 거라고 확신했어."

that-night-in-seoul
그날 그 남자가 떠나는 모습을 본 후 찍은 사진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다음 카페에 가입했다. Jazz Music에 관련된 동호회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늘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늘 라디오를 들었다. MBC FM을 특히 좋아했다. 오후 6시 배철수의 음악캠프부터 자정까지 내가 좋아하는 DJ들이 방송을 진행했다. 그중에 Jazz는 나의 귀를 사로잡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시절을 보내며 나와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또래의 친구는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몇 개의 음악동호회에 가입했고 고 2 때 '그 음악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동안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마다 내 방 작은 오디오의 녹음버튼을 눌러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듣곤 했었다. 하지만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광고나 라디오 주파수 문제로 음질이 좋지 않은 것이 흠이었다. 하지만 그 온라인 동호회에는 좋아하는 음악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장르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음악 장르의 특성상 성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기소개와 함께 가입 인사를 남겼을 때 동호회 회원들은 몇 없는 10대 나이의 회원이라면서 반가워해 주었다. 그리고 그 몇 없는 10대 나이의 회원들도 댓글을 남겼다. 나를 포함해 4명이 전부인 거 같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나이였다. 그중 한 명은 나와 같은 도시에 산다고 했다.

이럴 수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이웃 남자고등학교의 학생이었다.

우리 4명은 같은 나이와 어른스러운 음악취향을 가진 특별함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온라인 메신저와 이메일로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중 같은 도시, 이웃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오프라인 모임을 제안했다. 4명 중 나만 여학생이었다. 남녀공학에 다니던 나, 그런데 이상하게 긴장되었다.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진짜 재즈를 좋아한다면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면서 재차 참석을 권했다.

그래서 같은 도시에 사는 남학생을 전철역에서 먼저 만나 정모장소로 가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주말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철역에 도착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 핸드폰을 열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사람을 봤다. 바로 그 남학생이었다.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아주 해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악수를 청했다. 나의 손을 잡고 아주 경쾌하게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얼굴이 빨개졌다. 얼른 손을 놓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전철을 탔다.

참 밝은 아이였다. 낯가림도 없는지 나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본인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고 했다. 음대에 가고 싶지만 부모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른 학과를 지망한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색소폰을 정말 잘 분다고 했다. 역시나 다른 학과를 지망한다고 했다. 나머지 1명은 악기를 연주하지 않지만 척척박사 급으로 음악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고 했다.

나에게 어떻게 이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 된 계기로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연주하는 악기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체르니 30까지 배웠던 것이 전부라고 했다. 사실 기타를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피아노만 강요해서 악기 연주에 흥미를 잃었다고 했다.

그 애는 활짝 웃으며 자신도 그런 슬럼프가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음악이 좋아서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데 정작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남녀가 합반인 남녀공학을 다니는 나였지만 남학생과 같은 10대끼리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더 수줍어졌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했다.

드디어 서울,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홍대'역이었다. 처음으로 가본 곳이었다.

사람이 참 많았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겨우 고등학생인 내가 너무 초라해서 우울해질 정도로 멋진 분위기가 넘쳤다. 출구로 나오자 동행한 그 애가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키가 크고 뭔가 세련되어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두 번 더 악수를 해야 했다. 이번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등에 커다란 악기가방을 멘 남학생이 나에게 유일한 홍일점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남자 셋이서 홍일점을 잘 챙겨주자고 농담을 건넸다. 그들은 "10대가 4명뿐인 동호회에서 어떻게 둘이서 바로 옆고등학교에 옆동네까지 사는 우연이 있을 수 있냐"라고 말했다.

서로 잘해보라며 그 애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 애는 일부러 더 크게 웃는 듯했다. 더 부끄러워진 나는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짓궂은 농담을 마친 3명의 남학생은 나에게 홍대의 희귀 음반이나 책을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들을 알려주겠다면서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그들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내 옆에 '그 애'가 있었다.

'그 애'는 곧 나의 첫 번째 남자친구가 되었다. 짧고 서툴었던 고등학생의 풋사랑.

"그날. 그 거리에서 네가 혼자였어도, 더 머물렀었더라도 난 결코 너에게 다가가 어떤 것도 묻지 않았을 거야. 그 20여분 동안 네 옆의 사람과 대화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 참 보기 좋았어.
나는 일주일 뒤에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그리고 곧 10년이 되어가는데 단 한 번도 한국에 방문하지 않았어."

그래서였을까? 내 운명이 마지막으로라도 너를 마주치게 했던 건가 봐, 마음속에서라도 인사하라고 말이야.

네가 준 음악 CD랑 책들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어.
정말 고마웠어, 행복하게 잘 살아.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