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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하나, 혜화동 대학로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는 것도 이제 곧 10년 차가 되어간다. 그동안 한 번도 한국에 가지 않았다. 특별하게 그리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여운이 남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기억, 어떤 한 가지를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다.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는 것도 이제 곧 10년 차가 되어간다.

그동안 한 번도 한국에 가지 않았다. 특별하게 그리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여운이 남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기억, 어떤 한 가지를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스멀스멀 올라온 감정, 결국 오늘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한국에 대한 향수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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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국의 집 창문을 통해 본 저녁 불빛

중학교 2학년 여름이 가까워오는 어느 늦은 봄, 혼자 서울에 가기로 결심했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 살던 터라 전철 노선표만 가지고 있다면 한두 번의 환승만으로도 서울의 대부분의 번화가에 가 볼 수 있었다. 한 번도 혼자서 서울을 가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친척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서 만약 길을 잃으면 그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삼촌이 뒤늦게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나도 그 대학교에 입학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전철을 타고 떠나는 주말의 짧은 여행, 긴장했지만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었다. 모아둔 용돈과 전철 노선표만 챙겼다. 설렘과 초조함으로 빈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출입문 가장자리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 창문 밖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한강이 보였다.

흔들림을 동반한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레일 위를 달리는 전철인데 한강을 가로질러가던 순간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듯한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한강, 그리고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겨우 십 대 중반 나이에는 처음이고 신기한 것들이 정말 많다. 드디어 혜화역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가득했다. 많은 대학들이 위치한 곳이라서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그들은 참 예쁘고 멋있었다.

전철역 안에서부터 이미 행복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작은아버지가 알려주었던 출구 밖으로 나왔다.

와!!! 마음속에서 저절로, 아주 크게 감탄사가 나왔다. 잠시 동안 몸의 어떤 부분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멈춰있었다. 눈앞에 뭔가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잠깐 어지러웠다. 그 대학교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도 잊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를 수많은 인파에 파묻혀 그들이 걷는 대로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매 초마다 새로운 풍경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혼자라는 외로움도 느낄 새가 없었다. 햇빛에 눈이 부셨다. 살랑이는 바람에 실려온 길가에 예쁘게 가꿔진 화단과 나무에 만개한 꽃향기에 취했다. 이제 곧 40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그 순간의 벅차오르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기억이 만들어주는 필터효과 때문일까?

그날은 내 인생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쨍하게 파란 하늘과 여름이 오기 직전의 선선하지만 따스한 날씨에 산들바람이 불었던 날이었다.

공기의 냄새마저도 아직 생생하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부터 2023년 7월 17일 오늘까지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하고 그립다. 추억이라고, 멋진 기억이라고 단어화 시키는 것이 싫다. 나이가 많아지는 만큼, 그때의 나와 멀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슬픔이 커진다.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그저 혼자서 서울의 종로구 혜화동을 갔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걱정도 하지 않고 무작정 낯선 거리를 걸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셀 수도 없을 만큼 혜화동을 거닐었지만, 중학생 시절의 첫 느낌을 다시 받을 수는 없었다.

사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을 걸으며 작별 인사를 했었다, 절대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된다면, 혜화동 대학로 길을 다시 걷고 싶다.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