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시부모님의 고향 그 아름답고 따스한 풍경

남편과 비엔나 교외나 자연이 펼쳐진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여름휴가나 가족행사를 위해 산골에 위치한 시부모님의 고향으로 향할 때면 도로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의 소나 말들을 볼 수 있다.

동물들의 안전과 소유주들의 구역을 나누기 위해 낮게 설치된 줄은 한국인인 나의 눈엔 부실해 보일 정도다. 잘 관리된 넓은 공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햇빛과 바람을 즐기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소들과 갈기를 휘날리며 마음껏 뛰는 말들, 모두 건강해 보였다. 모질도 얼마나 좋던지,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짧게 스쳐가며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노을 속에 달리는 말들의 모습은 눈이 부실만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정말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삼삼오오 모여 얼굴을 맞대고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 그들만의 언어로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경관

1.
시부모님의 고향, 경사가 높고 구불구불 커브를 돌고 돌아 산골에 위치한 마을에 진입하면 중심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당의 높은 탑이 가장 먼저 보인다. 그리고 크고 작게 무리를 지어 심지어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목까지 자유롭게 동네를 산책하는 닭들과 오리, 거위들을 볼 수 있다. 당연하게 자동차와 사람들은 속도와 소음을 줄이고 그들이 부상을 입거나 겁을 먹지 않도록 주의한다. 각자가 가진 목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길에서 마주치는 마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미소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걸며 반겼다. 또한 시계와 지도를 휴대하고 다니는지 때가 되면 자신의 집으로 귀가했다.

오스트리아의 시골 주택의 강아지와 개들은 주택의 정원이나 마당에 묶여있지 않다. 각각의 집마다 높낮이가 다른 울타리로 둘러져 있지만 마당과 건물이 보이고 이웃끼리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사는 집의 울타리를 함부로 넘지 않았다. 들판의 소들이 해가 질 무렵 우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멋지게 리드했다. 한 마리의 소도 낙오되지 않도록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사람과 함께 집 밖을 산책할 때는 언제나 리드줄을 매고 매너 있게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걷는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 및 동물들과 친하지만 낯선 사람의 방문이나 침입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리고 주인을 비롯 자신이 돌보는 다른 동물들의 안전은 물론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지켜낸다.

2.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활보했는데 그들이 어디를 가든 마을의 사람들이 예뻐했다. 주인이나 사는 집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거의 모든 가정에서 마당 한편에 비와 눈,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밥그릇과 물그릇은 기본이다. 기본적인 약품도 구비해서 동네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고양이들이 아플 경우 약을 급여하고 치료했다. 상태가 심각할 경우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고양이들은 자연스럽게 원하는 집과 사람을 선택해 산다고 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산책하지만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다.

집 안에서만 지내는 고양이도 많다고 했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집 안에서 살기를 원할 경우 내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느 가정에 소속되어 살고 있는 개와 다른 동물들, 닭과 오리, 심지어 병아리들도 마을의 고양이들이 오고 가는 걸 자연스럽게 여겼다. 오고 가는 고양이들도 동물들을 위협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나 말의 우리까지 들어갔는데 경계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서로 낯이 익어 친해진 개들이나 소와 말들은 물론 닭과 오리 거위들에게까지 먼저 다가가 몸을 비비며 인사하고 애정을 표시했다. 그렇지만 쥐나 벌레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본능을 발휘해 사냥했다.

3.
태어나 처음 보는 동물과 사람의 모습, 신기할 정도로 정겹고 정겨운 그래서 너무 낯선 오스트리아 산골 마을의 풍경.

결국 남편과 시부모님 앞에서 체면도 나이도 잊었다. 마치 말도 서툰 어린아이가 감탄사를 내뱉고 폴짝폴짝 뛰며 행복을 표현하는 것 같은, 하지만 40살이 가까워진 성인이 하기엔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숨길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산지 몇 년이 흘렀지만 이런 풍경을 볼 때면 매 순간 새롭고 행복하다.

기저귀를 차서 둥실한 바지 핏, 발그레한 얼굴, 작은 양손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할머니집의 마당을 청소하려는지 엉거주춤한 순간이 담긴 오래된 사진 한 장. 걸음마를 뗐지만 여전히 서툴어 보이는 어린아이, 아이를 에워싸듯 모여든 닭과 오리 병아리들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들까지.

바쁜 와중에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최대한 들어 방긋방긋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작은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통통한 볼살을 가진 연갈색 곱슬머리의 남자아이.

안 그래도 높이 솟은 내 얼굴의 광대뼈가 하늘 끝까지 치솟을 만큼 미소 짓게 하는 남편의 어릴 적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