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양이 이야기 다섯번째
어느새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하루하루 차가워지는 공기 때문일까? 남편과 나는 어떤 기약도 없이 보호소에서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13마리 고양이들에게 슬픈 감정이 커졌다.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자들은 물론 입양희망자들이 자주 13마리의 거취에 대해 묻지만, 직원들과 보호소 측에서는 딱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
고양이 구역의 직원들은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눈물을 흘렸다. 나와 남편도 직원들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제는 13마리의 방에 들어갈 때면 눈물을 참아야 했다. 너무나도 불쌍했다. 보호소와 법적인 소송에 걸린 상황에서도 모른 척하는 13마리의 원래 주인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일요일은 금세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오전에 어떤 장소에 들르는 것을 시작으로 동물보호소로 향했다. 나무로 우거진 보호소 건물의 주변엔 수많은 낙엽들로 인해 쓸쓸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쌀쌀한 공기 속에서도 고양이 구역의 방마다 연결된 외부공간에는 많은 고양이들이 나와있었다. 늘 그렇듯 고양이들은 안전망 앞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인사하며 응시했다.
유난스러운 걸까? 아니면 감정의 과잉상태에 빠진 것일까? 추워진 공기 때문에 활동량이 줄어든 것뿐일 텐데 그날따라 고양이들이 모습이 많이 쓸쓸해 보였다. 심지어 그들이 우울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오스트리아의 스산하고 쓸쓸한 어느 겨울 하늘 |
2.
유럽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제는 이곳의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의 입장에서 보는 가을과 겨울은 더 이상 새로움이나 운치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스트리아는 우울증 환자와 자살률이 높기로 나름 유명하다. 북유럽에 사는 것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일조량이 확연히 줄어들어 이른 오후부터 어둑어둑해지는 것이 싫다. 겨울엔 눈보다 비가 더 자주 내린다. 비가 내릴 때면 하루종일 햇빛 한점 없는 잿빛뿐이다.
고양이 구역이 들어선 우리, 늘 그렇듯 먼저 직원이 어디 있는지 살펴 그들에게 왔다고 인사를 한다. 직원 두 명은 복도 끝 어느 방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인사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로 와보세요! 기쁜 소식이 있어요." 일주일 사이에 13마리의 방이 바뀌어있었다. 직원들은 그 방의 내부를 볼 수 있는 커다란 유리창 안을 가리켰다.
"드디어 13마리가 가정으로 장기탁묘를 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미 9마리가 장기탁묘를 해줄 집으로 떠났어요."
"와! 정말요? 겨우 며칠사이에 9마리나 장기탁묘를 가다니 빠르네요! 정식 입양 말고 장기탁묘도 가능했었나요?"
"장기탁묘는 신청을 받지 않아요. 저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부탁하고 있어요."
3.
13마리가 영구적인 입양이 아닌 장기탁묘라는 형식으로라도 보호소를 떠나 믿을 수 있는 가정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기쁜 소식에 웃음은 물론 박수가 절로 나왔다. 특히 보호소와 오랫동안 신뢰가 맺어진 사람들에만 맡겨졌다는 것에 행복했다. 일개 봉사자일 뿐인 우리인데, 왠지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제 4마리만 남았네요. 남은 아이들도 곧 장기탁묘 가정으로 떠나나요?"
아늑하게 꾸며진 방에는 몇 년 전 주인이 호텔링으로 맡겨놓고 잠적해 버린 13마리 중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지 않던 2마리의 암고양이(소송이 진행 중이라 책임 및 소유권 문제로 인해 보호소에서 보호소 예산으로 중성화수술도 해줄 수도 없었던)와 다른 2마리의 암고양이까지 총 4마리의 고양이가 남아있었다.
"장기탁묘 가정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모두 장기탁묘를 갈 거예요. 중성화가 되지 않은 2마리도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수술에서 회복되면 장기탁묘를 보내려고 해요."
4.
직원은 형식상 장기탁묘일 뿐 사실상 영구적인 입양이라고 했다. 다만 다른 입양과 달리 보호소와 탁묘가정이 공동책임을 진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보호소에 장기탁묘 중인 고양이의 소식을 보고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고양이들에게 어떤 사소한 문제라도 생길 경우 보호소에 가장 먼저 알리는 등 모든 사항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 장기탁묘에 드는 각종 비용은 보호소가 지원하지 않고 탁묘를 하기로 한 사람/가정이 전부 부담한다고 했다.
보호소에 13마리의 고양이의 호텔링을 맡겨놓고 비용지불 없이 잠적한 주인과 "밀린 비용지불"에 대해 소송 중인 사실을 아는 우리는 이 장기탁묘조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렇게나 좋은 일이! 직원의 대답에 기쁨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방 안을 자세히 살피는데 '그 갈색털복숭이'가 보였다.
'뭐지? 왜 아직 남아있는 거지?' 갈색털복숭이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복잡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아직 남아있는 걸까? 이렇게나 예쁘고 발랄하고 상냥한 고양이를?'
그런데 평소처럼 우리를 향해 유리창 앞으로 뛰어오지 않았다. 대신 가지런한 자세로 방 한가운데에 앉아 우릴 보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정말 진지해 보였다. 처음 보는 모습에 낯설었다.
.....
"그래서 말인데,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 사무실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전문적인 교육을 수료하고 동물보호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이들은 몇 년 동안 돌봐온 '이 갈색털복숭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동안 직원들이 우리에게 건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사무실에서 무엇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될지 확신할 수 있었다.
가끔씩 직원들이 물을 때면, 고양이 입양은 용기도 자신도 없다고 말했던 우리였다. 감히 꿈꾸지도 않겠다고 나와 남편, 서로가 굳게 약속했었는데...
직원을 따라 사무실로 향하는 짧은 순간, 우리는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